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온 의정서 (문단 편집) === 나치의 반응 === 시온 의정서는 [[러시아 혁명]] 이후 러시아에서 넘어온 이들에 의해 독일에 전수되었다. [[https://ko.m.wikipedia.org/wiki/%ED%91%9C%ED%8A%B8%EB%A5%B4_%EC%83%A4%EB%B2%A8%EC%8A%A4%ED%82%A4%EB%B3%B4%EB%A5%B4%ED%81%AC|표트르 샤벨스키보르크]]가 주요 발행인으로서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. [[아돌프 히틀러]]도 시온 의정서를 입수하여 읽어 본 적이 있으며 히틀러에게 시온 의정서를 전수한 인물은 [[발트 독일인]] 출신인 [[알프레트 로젠베르크]]이다. 시온 의정서는 [[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]]이 집권하기 이전에 이미 가공된 자료임이 밝혀졌지만 나치는 시온 의정서를 사실로 여기고 자신들의 출판사에서 계속 시온 의정서를 발행했다. 나치는 책 서문에서 텍스트의 성격은 내용과 형식에 의해서만 결정되고 따라서 의정서가 위조되었는지의 여부는 관련이 없다고 하였으며, 역사적 사실 여부는 판사가 결정할 수 없다며 시온 의정서 관련 재판을 비판했다.[[https://research.calvin.edu/german-propaganda-archive/protocols.htm|#]] 추 베크(Zur Beek)와 [[알프레트 로젠베르크]]는 모리스 졸리의 진짜 이름은 모이스 조엘(Moïse Joël)이며 유대인이라고 주장했고 울리히 플라이슈하우어(Ulrich Fleischhauer)는 세르게이 닐루스가 아닌 1897년 8월의 유대인 회의들에서 채택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. 히틀러는 그의 저서인 [[나의 투쟁]]에서 시온 의정서가 '위조문서라는 중상을 받고 있지만 분명히 진실'이라고 강조했다. 괴벨스는 그의 일기에서 시온 의정서가 위조된 것이지만[* 그 이유는 내용이 말도 안 되어서가 아니라 유대인이 이를 비밀로 하지 못하기에는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.] 그 내용은 유대인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